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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마음이 만나는 풍경

 

   이종숙 작가는 2018년 개인전 서문에서 “나의 작업은 자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끝없이 나의 삶을 여행한다.”고 말한다. 자연을 접하는 매 순간이 자신의 삶을 접하고 돌아보는 시간이며, 그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감동시키는 순수한 진실을 대면하고 거기서 진지한 삶을 향한 에너지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는 “나의 작품의 근원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나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다양한 모습에 나의 모습을 비추고 좋은 방향으로 승화해 나가는 노력과 힘을 원으로 나타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가 그려내는 자연의 풍경은 그가 만나는 자기 내면의 풍경이며,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은 삶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갈등이나 아픔을 극복하면서 얻어지는 감동이자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삶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가가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과 작가 내면의 풍경이 서로 만나 서로의 길이 통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어느 지점에서 외부 풍경을 거닐던 작가가 내면의 풍경으로 들어와 삶의 감동과 에너지를 얻는 순수한 진실의 순간을 접하게 되는 것일까?

   그가 주목하는 자연 풍경은 드넓은 평야와 산, 신비스러운 광경이 어우러진 바다, 그리고 계절마다 펼쳐지는 색의 향연들이다. 그 자연은 장엄하거나 경외로운 자연일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려내는 풍경은 부드러움과 평온함 속에 자리 잡은 생동감을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풍경 그 자체 보다 그러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자연 내면의 풍경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기가 작가의 마음과 자연 풍경이 만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가 그려내는 풍경 시리즈 작품들은 그러한 풍경의 내면을 주목한다. 그 내면의 특성은 대체로 중앙에 크고 작은 원 모양의 이미지들이 있고 질서정연한 작은 점들의 이미지들이 견고하게 이들을 둘러싸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앙에 있는 다채로운 원의 이미지들은 마치 봉쇄구역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생명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주위 색깔에 비해 강렬하되 따스한 붉은 색상의 이미지로 단조로워 보이는 전체 풍경을 살아있게 한다. 주변의 이미지들이 이들을 압박해 들어오는 단조로운 잿빛 색깔을 띠다가도 때로는 평온하고 안정된 밝은 색깔로 변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건 바로 이 중심의 이미지가 살아 있어서다. 전체적으로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생명의 영역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질서정연한 구도 안에서 중심에 있는 생명의 움직임에 반향하며 부드럽고 다양한 빛깔을 활발하게 드러내며 아름다운 전체 풍경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모습을 ‘행복’이라고 표현한다.(Landscape-Happiness I, II).

 

   이렇게 보면 작가는 ‘보기에 참 좋은 창조질서’의 풍경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은 무언가를 배척하는 획일성을 지향하는 질서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추구하는 질서는 생명을 보존하고 생명의 온전한 발현을 지향하는 창조질서다. 종종 위협적이고 불안해 보이는 자연이 여전히 안정되고 평온해 보이는 건 생명을 침범하지 못하게 보호하는 봉쇄의 힘을 자연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봉쇄구역이 있어 생명이 늘 살아나고 그 생명이 살아 주위를 변화시키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가의 많은 작품에서 우리는 그러한 풍경을 만난다. 물론 생명의 보호구역이 드러나지 않는 풍경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직선이나 각진 도형의 이미지들이 부드럽고 활기찬 도형의 이미지 안에 편입되거나 (Landscape I, II), 획일적인 질서의 이미지가 평화로운 물결의 흐름에 편입되어 나타날 때이다 (Landscape VII, VIII). 그래서 단조롭거나 불안해 보일 수도 있을 풍경이 꿈같은 아찔함,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평온한 생동감을 준다 (Landscape-Vital movement I, II, III). 굳이 생명이 봉쇄구역 안에서 보호받을 필요 없이 봉쇄가 풀어져도 좋은 생명의 세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명을 소중하게 품고 지켜내는 모습이 바로 작가가 포착하고 싶어 하는 풍경이다. 생명이 자라 주위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연의 풍경이 작가의 내면과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본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에 반향하는 자기 내면의 감정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소중하게 지켜내고 살려내는 생명에서 자신이 소중하게 지켜내야 하는 생명을 만나는 것이다. 그 생명이 어떻게 자기극복의 길을 열어주는지를 듣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을 살아있게 하는 힘은 생명이고. 그 생명을 지켜야 자연이 살아나고 보기 좋은 창조질서가 이루어진다. 작가는 자연 풍경을 살아있게 하는 이 생명의 본질이 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을 자라게 하며,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보기 좋은 창조질서’가 자기 내면에서 회복되는 것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검은 현무암과 붉은 화산재로 뒤덮인 불모의 땅에서 자라는 토마토의 풍경시리즈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작가는 토마토의 외적 풍경과 내면 풍경을 연결시킨다. 토마토의 생명은 사방에서 위협하듯 압박해 들어오는 ‘견고하고 질서정연한 잿빛 작은 이미지들’에 둘러싸인 중앙의 붉은 색상의 둥근 이미지로 표현된다(Iceland의 붉은 토마토 II). 마치 세상을 향해 열려있으나 세상에 함몰되지 않으려 스스로를 봉쇄한 수도원처럼 제 안에 생명의 봉쇄구역을 만들어 그 안에서 세상을 살려내는 생명을 키우는 것이다. 이 생명의 성장은 중앙의 붉은 원 주위로 사방의 색상이 환하게 변하는 이미지로 나타나며(Iceland의 붉은 토마토 IV), 생명이 완전히 자라 한창 무르익을 때는 원과 곡선이 어우러져 사방으로 퍼져 세상을 바꾸는 모습으로 그려진다(Iceland의 붉은 토마토 II 시리즈). 불모의 땅에서 선명한 색깔의 토마토가 마치 솟대처럼 자라 절망에서 희망을 불러낸다.

 

   이것이 자연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기 극복을 위한 여정을 걸어온 작가 이종숙이 그려내는 내면의 풍경이다. 견고한 경계를 허물며 빛을 확산시켜가는 생명의 성장, 오랜 기간을 거쳐 절제되지만 성숙한 생명으로 자리 잡는 질서, 하지만 자유로운 생명의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창조적 욕구를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절실함이 자연 풍경을 그리면서 이러한 깨달음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외부 풍경을 거닐던 작가가 내면의 풍경으로 들어와 삶의 감동과 에너지를 얻는 순수한 진실이 아닐까?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같이 ‘위로 받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 광 용 (시인 / 문학박사 / 수원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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