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금호미술관2023)

 

<이종숙 작품이 주는 명상 수행>

 

  이종숙 작가의 작품은 늘 생명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의 구체적인 외양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 생명과 삶을 관상(觀想)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통찰을 표현하려 하고, 그것을 점, 선, 면, 도형이나 색 등의 이미지로 추상화하여 표현한다. 하나의 화두에 대한 끊임없는 집요한 관상(觀想)과 통찰의 실천,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독특함은 그의 작품이 관상(觀想) 또는 명상 수행과 같다는 느낌을 준다.

  우선 그가 관상(觀想)에서 발견한 통찰은 자신을 보존하고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안정된 질서구조와 부지런한 움직임이다. 필자는 그것을 제 생명을 탄탄하게 지켜내는 씨앗 구조로 표현한 적이 있다. 가운데 중심핵을 이루는 원이 있고, 그 원은 보호막 같은 둥근 원들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겹겹이 둘러싼 원 안에는 혈관을 도는 피처럼 작은 아이콘들이 부지런히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돌며 생명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생명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세계와 자신을 구분 지운 구조이다. 더 중요한 속성은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질서정연한 움직임이다. 작가는 그것을 생명의 에너지로 본다. 그 생명의 에너지가 부지런히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와 조화를 이루거나 맞서면서 성장하고 자연을 만들어간다. 살아가면서 사람들 안에서 혹은 자연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혹은 간절함 등의 다양한 풍경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것이 작가가 바라보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자연이다.

  자연의 변화와 생명의 존재양식에 대한 작가의 관상(觀想)은 매년 피고 지는 꽃, 태어나고 죽는 생명에로 향하면서 그 깊이는 더 잘 드러난다. 그는 자연과 삶 안에서 매년 피고 지는 꽃과 새로 태어나고 죽는 생명을 바라보면서 ‘소멸과 사라짐’의 주제를 관상(觀想)한다. 자연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나고 사라지지만 자연은 늘 살아 있고 생명도 살아있다. ‘소멸과 사라짐’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작가는 죽음이 단순한 소멸이나 사라짐이 아니라는 통찰에 이른다. 죽음은 생명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구축한 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에게 집중했던 에너지를 자신이 경계했던 세상 속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세계가 자신을 둘러싼 바깥 세계와 합쳐진다. 그 둘의 세계는 본래 분리된 세상이 아니라 같은 세상이고, 자신과 다른 모든 생명을 있게 한 세계임을 깨닫는 것이다. 소멸을 주제로 한 작품이 이전 작품과 다르게 표현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따라서 바깥 세상으로의 편입은 자신이 배척하고 경계했던 세상과의 통합을 경험하는 것이고, 개별적인 생명 존재로서의 내가 사라지고 새로운 생명의 원천으로 존재하게 되는 자아의 확대이다. 그러한 변화는 마치 바닷물에서 나온 소금인형이 바다라는 세상에 녹아 들어가면서 개별 인형으로서의 존재를 버리고 바다가 되는 것과 같다. 죽음이나 이별은 슬퍼하거나 가슴 아파할 일이 아니라 갈등도 걱정도 없는 우주적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 새로운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그 순간은 ‘아름답고 따뜻하게’ 찾아오는 때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세계를 거쳐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소멸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작품에서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자연과 생명과 그것들의 변화에 대한 관상(觀想)과 명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제 생명을 소중히 지켜내고자 하는 생명의 부지런한 움직임, 그 움직임이 보여주는 삶과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 생명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생명의 완전한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 거기에 온전하게 잘 살아내려는 생명의 절절하고도 부지런한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관상하고 꼼꼼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실천이 작가의 작품을 명상 수행과 같다는 느낌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문학박사, 수원여자대학교 교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감사  (​세종갤러리, 2021)

   이종숙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먼저 정형화된 질서와 그 질서에서 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그 질서 구조는 일정 패턴을 따른다. 중앙에 작은 원이 있고 그 안에 따뜻하고 희망적인 느낌을 주는 둥근 도형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모여 있다. 그 원의 테두리 역시 안정과 희망을 주는 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또 다른 원이 있고, 그 원 안에는 동일한 형태의 작은 모형들이 질서 정연하게 원의 궤도를 따르며 정렬되어 있다. 이러한 패턴은 제 생명을 탄탄하게 지켜내는 씨앗 속 구조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러한 모습이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하고 희망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탄탄한 질서 안에 품고 있는 세상, 언제든지 그 생명을 틔우고 풍부하고 아름답게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상, 그것이 생명이 창조하는 자연이다. 그녀는 이러한 자연에서 ‘자신을 감동시키는 순수한 진실을 대면하고 진지한 삶을 향한 에너지를 발견’한다. 필자는 그녀가 자연에서 포착한 에너지는 ‘생명을 소중하게 품고 지켜내는 힘’이며 ‘보기에 참 좋은 창조질서’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도 그러한 창조질서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 분위기와는 좀 다르다. 이전의 작품들이 자연 안에서 생명을 틔우고 지켜내려는 의지와 그 의지가 경험하는 아픔에 집중한 느낌을 준다면, 이번에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죽음과 이별, 슬픔이나 아픔도 창조를 이어가는 질서 흐름의 한 과정이라는 순응적 태도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노트에서 이번 전시 작품의 주제를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정하고, 거기서 느끼는 ‘생성과 소멸 그리고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고 한 것도 이러한 의도를 잘 나타내준다. 창조 질서가 담고 있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맞이하는 추운 겨울’이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올 봄을 위해 색과 향기를 준비하며 새봄을 맞이하는 희망’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치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가 보여주듯,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던 이유‘가 ‘노오란 네 꽃(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것‘임을 깨달은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작가가 특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도 계절의 변화가 익숙한 삶의 질서를 깨며 찾아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연스럽게 창조질서를 따라가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작가는 이 창조질서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보통 질서라고 하면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을 준다. 예술적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게다가 작가는 ‘점, 선, 면, 혹은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과 색’으로 자연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한 자연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녀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삶의 에너지와 힘(<작가노트>), 그리고 그 ‘에너지와 힘이 작동하는 창조질서‘를 느껴볼 수 있을까? 그것은 작가가 보여주는 질서의 안정감, 그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의 부지런한 에너지, 그리고 색상의 변화를 통해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창조질서가 고착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작가의 방식에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작가 특유의 예술적 창의성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또한 작가의 작품이 동일한 질서 구조를 지니면서도 창의적이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작가가 표현하는 자연의 구조는 사방으로 퍼지는 생명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가운데 작은 원은 생명이며, 주위 원은 생명을 둘러싼 세상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사방으로 향하고 주위 세상과 소통하면서 주위 세상이 변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변화는 색상의 변화로 질서구조의 역동성을 더해준다. 특히 가운데 원 주변의 색상의 변화가 생명력의 움직임의 특성을 살려낸다. 계절별로 중앙에 있는 원의 색상은 큰 변화나 움직임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계절마다 주위 색이 변한다. 예를 들어 봄의 자연 풍경은 생명의 진한 에너지가 온통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여름의 자연 풍경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안정과 성장의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모으면서 사방으로 연한 빛깔의 새로운 이파리들을 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을부터는 주위 세상이 스스로의 개성을 죽이면서 서로 뒤섞여 환상처럼 어울린 세상을 만들어가다가 겨울에는 아예 제 모습을 지우면서 중앙의 따뜻한 생명의 에너지만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색상의 변화로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생명들이 창조질서에 반응하고 순응하는 모습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창조질서가 유지되는 부지런한 움직임이다. 가운데 원을 둘러싼 원 안의 작은 아이콘들은 그냥 배열된 것이 아니다. 위치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이것들은 질서구조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부지런히 한 곳을 향하여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수많은 작은 도형들의 움직임을 그려내는 작가의 치밀함만큼이나 도형들의 움직임은 치열하다. 그것들은 질서를 벗어나지 않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마치 몸속의 피가 혈관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것처럼, 그러한 움직임에서 우리는 창조질서를 따라가는 생명의 치열한 끈기와 의지를 느끼게 된다.

 

   그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가의 끈기와 인내와 정성은 수행자의 수행을 연상시킨다. 이것이 작가가 창조하고 공유하고 싶은 자연의 모습이 아닐까? 이러한 자연에서 모든 피조물들이 살아나고 우리가 위로를 얻는다. 작가도 갓 피어난 매화가 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처연함‘을 느끼면서도 함께 해온 나날에서 위로와 감사를 느낀다(<작가노트>) 했다. 작가가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광 용 (시인 / 문학박사 / 수원여자대학교 교수)

bottom of page